[디자이너가 된 엔지니어-9] 미국 직장 — 영어 스트레스와 발표 울렁증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반도체 설계 및 모바일 소프트웨어 연구원으로 일하던 저자가 시각 디자인을 다시 공부하고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에서 10여년간 UX 디자이너로 일해오며 경험한 스토리를 공유합니다.

Yoon Park (박동윤)
6 min readSep 18, 2021

디자이너이자 크리에이티브 테크놀러지스트이며 저자인 박동윤(Yoon Park)은 현재 미국 시애틀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의 Mixed Reality Design & UX Research 팀에서 Principal UX Designer로서 홀로렌즈 및 혼합현실 서비스와 관련된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다.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반도체 설계 및 모바일 소프트웨어 연구원으로 일하다 그래픽 디자인이 너무 좋아 시각 디자인을 다시 공부하여 디자이너로서의 커리어를 새롭게 시작했다.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2011년 Typography Insight앱을 출시했으며, 현실 공간에서 타입 레이아웃을 가능하게 하는 Type In Space라는 홀로렌즈용 앱을 만들기도 했다.
홈페이지 —
http://dongyoonpark.com
링크드인 —
https://www.linkedin.com/in/cre8ivepark/

유학생의 신분으로 1년 이내에 취업을 해야 한다는 큰 관문은 넘었으나, 과연 미국 회사에서 영어로 업무를 해 나갈 수 있을지가 나의 가장 큰 걱정이었다. 다행히 미국 첫 직장인 마이크로소프트에서의 생활은 어느덧 몇 달이 지나고 잘 적응해 바쁘게 진행되는 윈도우즈 8용 앱 프로젝트의 다자인 작업을 몰입해서 즐겁게 해 나가고 있었다. 취업을 한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인데, 이렇게 몇 달간 큰 문제없이 일을 잘 해내고 있다는 것에 스스로가 대견하게 느껴졌고 팀원들에게 감사했다.

하지만 아직도 내가 특별히 발표할 내용이 없는 미팅에서는 말 한마디 꺼내기까지 너무나 많은 고민과 긴장, 그리고 두근거림이 심해 대부분은 직접 나서서 말을 하는 경우는 잘 없었다. 누군가 직접적으로 나의 의견을 묻거나, 내가 맡고 있는 앱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면 크리틱을 하거나 의견을 내는 일이 너무도 힘들었는데, 어설픈 내 영어가 탄로 나지는 않을지, 나의 버벅거리는 영어로 바보 같아 보이지는 않을지 등의 고민이 그 이유였다. 여러 사람 앞에서의 발표는 물론이고, 팀 멤버 서너 명이 있는 작은 미팅에서 조차 발표를 한다는 게 참 긴장되고 쉽지가 않았다. 가뜩이나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에 내 목소리가 크게 나아간 다는 것에 익숙지 않았고, 거기에 더불어 미숙한 영어가 항상 긴장과 스트레스를 가중시켰다.

몇 명이 안 되는 소규모의 디자인 팀이고, 각자 전적으로 맡은 앱이 하나둘씩 있는 상황이라 아이디에이션부터 스케칭, 와이어 프레이밍, 프로토타이핑, 유저 리서처와의 협업, 비주얼 디자인, 인터렉션 디자인, 모션 디자인, 그리고 디자인 인테그레이션까지의 모든 과정을 커버를 해야 했기에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디자인의 당위성을 납득시키고 프로그램 매니저들과 엔지니어들이 같은 방향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 다행하게도, 함께 일하는 프로그램 매니저들이나 엔지니어들과의 직접적인 1:1 커뮤니케이션은 큰 문제가 없었고 몇 달간 함께 일하면서 인도 특유의 엑센트에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

언어의 부족함을 극복할 수 있었던 첫 번째 방법은 역시나 이메일이었다. 미팅에서 차마 용기를 내어 말하지 못했던 내용을 이메일을 통해 최대한 잘 정리하고 다듬어 메일로 팀원들에게 보냈고, 이미지를 첨부할 수 있다는 점을 적극 활용해 생각하는 바에 대한 시각적인 자료를 포함해 좀 더 수월한 의견 교환을 할 수 있었다. 이메일의 장점은 어떤 질문이나 의견을 받았을 때, 순간적으로 이해하지 못해도 시간을 충분히 들여 내용을 파악하고 나의 생각을 정리해 답을 할 수 있다는 점인데,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더불어, 이메일은 디자인 팀뿐만이 아닌 큰 조직 전체에도 보낼 수도 있다는 강점이 있기에 (물론 수백 명의 조직에 전체 이메일을 보낸다는 부담도 크지만) 이를 활용해 간혹 중요한 디자인 시안이나 프로토타입 등을 조직 전체 메일로 보내 나와 디자인 팀의 작업을 프로그램 매니징과 엔지니어링 등 보다 큰 조직의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가능했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디자인 팀이 하고 있는 작업들과 진행 상황을 알릴 수 있었으며, 나의 존재를 알리는 것도 가능했다. 이때 나의 강점을 적극 활용해 주요 디자인 결정 사항들에 대해 시각적 이미지와 글을 잘 정리하여 커뮤니케이션을 했는데, 조직 내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메일에 대해 고마움을 표했고, 좋은 피드백들을 보내주어 디자인 팀이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중요한 디자인 요소의 개선에 큰 도움을 얻기도 했다.

내가 언어의 불리함을 극복할 수 있었던 또 한 가지의 방법은 최대한 프레젠테이션 슬라이드나 — 보통 ‘덱 (deck)’이라 부른다 — 프로토타입 등의 자료를 상세하게 준비하는 것이었는데, 이는 파슨스의 대학원에서 강의를 맡았을 때도 그랬다. 한 학기 동안 부족한 영어로 매주 두 번 1시간이 넘는 긴 강의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프레젠테이션 슬라이드를 최대한 명백하고 자세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준비하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수업 한 번에 자료 준비에만 며칠이 걸려 고생을 많이 했는데, 덕분에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최대한 잘 요약하고 임팩트 있게 시각화하는 습관이 몸에 베기 시작했다. 언어의 불리함을 이겨내고 시각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공감을 얻을 수 있고 의사소통을 보다 유연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유리한 측면이 많다고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어느 날 이런 고민을 매니저인 로드니와의 1:1 미팅에서 털어놓았는데, 여기서 큰 도움이 되는 조언을 들었다. 자신도 영국 출신이기에, 처음에 마이크로소프트에 합류했을 때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미국식 미팅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서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이야기를 해주며, 어느 날부터는 “미팅에 들어가면 무조건 최소한 한마디는 하고 나오자”라는 목표를 세우고 실천을 했더니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나에게도 그 방법을 적극 권했는데, 실제로 그 후 많이 미팅에서의 참여율을 높일 수 있게 되었다. 미팅에서 워낙 말 수가 적은 내가 의견을 내니 팀 멤버들은 더 귀 기울여 주며 경청해주었고, 조금씩 좀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나의 변화를 사람들도 반겼다. 발표 울렁증에 대해서는 특별한 방법을 찾지 못했는데, 토스트 마스터(toast masters)라는 스피치 관련 프로그램 소개 이메일을 받기도 했었고 고민을 했으나, 이조차도 용기가 나지 않아 신청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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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 Park (박동윤)

Designer & Creative Technologist. Principal Designer @Meta Reality Labs, ex-Microsoft HoloLens. http://dongyoonpark.com